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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물썰물] 백신 황제
/ 박창호 수석논설위원

한센병 환자들의 한(恨)과 원(怨)은 하늘에 사무쳐 있다.

'나는/나는 죽어서/ 파랑새 되어/푸른 하늘/ 푸른 들/날아다니며/푸른 노래/푸른 울음/울어 예으리/'(파랑새) 한센병을 앓았던 한하운은 이렇게 읊었다.

지난 17일 전남 고흥군 소록도 병원 개원 90주년 기념식이 열렸다. 이날 한센인들은 40여년 동안 봉사하다가 지난해 귀국한 오스트리아 출신 마리안느(71),마가레트(70) 수녀가 살던 집에 기념 명패를 달았다. 의사들도 마스크를 쓰고 진료를 하는데 이들은 맨손으로 환자의 환부를 떡 주무르듯 했다고 한다. 환자들의 손톱,발톱을 직접 깎아주었던 신정식 병원장(94년 타계)은 '소록도의 슈바이처'로 불리고 있다.

엊그제 타계한 세계보건기구 (WHO) 이종욱 사무총장은 '아시아의 슈바이처'로 불렸다. 이 총장은 한센병 정착촌에서 의료인의 첫발을 내디뎠다. 대학 때는 안양 나자로 마을에서,WHO에 들어간 뒤는 남태평양 사모아 섬에서 한센병과 싸웠다. 나자로 마을에서 봉사활동을 하던 일본인 가부라키 레이코씨와 결혼했다. 국적을 떠나 봉사와 희생 정신이 맺어준 연분인 셈이다.

94년 WHO 백신국장이 되면서 소아마비 환자를 세계 인구 1만명당 1명 이하로 줄여 미국의 '사이언틱 아메리카'로부터'백신 황제'라는 별명을 얻었다. 2003년 WHO 사무총장이 된 후 연간 30만㎞ 이상 비행기를 타며 미국,프랑스,러시아 정상들에게 의료펀드 확대를 호소했다.

사무총장은 관행상 국가원수급 예우를 해주었지만 그의 생활은 청빈했다. 승용차는 1천500㏄ 하이브리드카였고 비행기도 1등석 대신 늘 2등석을 고집했다. 국내에는 흔한 아파트 한 채도 없다고 한다. '가난한 나라의 분담금으로 호강을 할 수 없다'는 그의 얘기는 특히 우리 정치인·공직자들이 새겨 들어야 할 만하다. 자신을 희생하는 삶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를 새삼 깨닫게 해준다. pch@busanilbo.com
/ 입력시간: 2006. 05.24. 11:10